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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후: 혼돈의 밤 

길후 

 

김길후는 허공에 긴 칼을 휘두르는 검객일 수도 있고, 흐드러지게 한 판의 춤을 추는 춤꾼일 수도 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흔적이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다. 검객이나 춤꾼은 행위를 드러내지만 흔적은 남지 않는다. 그러나 김길후는 화가이기 때문에 붓을 들어 행위를 하고 흔적을 남긴다. 그런 의미에서 김길후는 붓을 들고 흐드러지게 진한 춤을 추는 무당(shaman)이다. 신명에 빠져 붓춤을 추면서 잃어버린 먼 태곳적의 영기(靈氣)를 불러내고자 한다. 예술이 지닌 치유의 기능을 초혼(招魂)을 통해 오늘 이 자리에 임재하게 하는 샤먼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평면이 됐든, 입체물이 됐든 김길후의 예리한 일필휘지가 스치고 지나가면 순식간에 기운생동에 충만한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은 거의 신비에 가깝다. 길이가 무려 15센티에 달하는 평붓에 검정색 물감을 듬뿍 묻혀 캔버스 위를 한번 휘저으면, 예리한 칼날에 뎅겅 목이 달아남과 동시에 검붉은 피가 솟구치는 것처럼 순식간에 죽음의 묵시록적인 이미지가 탄생한다. 고도로 긴장된 순간이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머리 속에 피가 솟구치는 전율이 온몸을 파고들면서 초긴장 상태에 도달한다. 여기서 다시 획() 자가 칼 도() 변임을 상기하자. 작가가 든 것은 붓이 아니라 은유로서의 칼이다. 그 칼로 단번에 내리치는(一劃)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김길후의 그림은 말하자면 죽임의 과정이자 죽음의 결과물이다. 죽음으로써 살아나는 이 역설의 미학! 그 피가름의 현장 한복판에 실행자 겸 목격자인 작가 김길후가 서 있다.

 

치유로서의 그림 中 발췌 | 윤진섭(미술평론가)